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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욱 JNT그룹 회장, 설비 자동화에 꽂혀 '기계의 神'이 된 사나이
출처 : 한국경제

등록일 : 2019/06/12

CEO 탐구

실패를 '실력'으로 바꿔 스마트폰 부품 强者로…

엔지니어에 가까운 경영인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빅데이터'
올 매출 5000억 바라보는 강소기업



[ 김진수 기자 ] 초등학교 미술시간이었다. 쟁반에 놓인 사과와 종이컵을 그리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모두 네모난 쟁반과 움푹 팬 사과, 사다리꼴 모양 종이컵을 그렸다. 한 학생은 친구들과 달리 컴퍼스를 꺼내 도화지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차례로 그렸다. “이 도화지가 쟁반이고 작은 원이 물컵, 큰 원이 사과예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보여요.”

장상욱 JNT그룹 회장(60)의 일화다. 당시 교사에게 엄청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발상을 전환하는 결단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회사를 설립한 뒤에도 늘 새로운 각도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JNT그룹은 1986년 모회사인 진우엔지니어링(자동화 설비업체)이 설립된 이후 30여 년 만에 매출 5000억원을 바라보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장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차별화된 기술 개발 노력 등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최고 엔지니어’ 꿈꾸던 공고생

장 회장은 1959년 경북 울진에서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해마다 봄철이면 보릿고개를 근근이 넘겨야 하는 힘든 시절을 보냈다.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했다. 대부분 또래가 농업고에 진학했다. 장 회장은 우연한 계기에 공업고로 방향을 틀었다. 중학교 때 제도(기계 건축물 공작물 등의 도면을 제작하는 교육 과목) 교사가 설계 등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에게 공고 진학을 권유한 것이다.

최상위권이 입학하는 부산기계공고에 합격했다. 적성에 맞고 성적도 좋아 대기업 장학금도 꽤 넉넉하게 받았다. 졸업 후 장학금을 준 기업에 취업했다. ‘최고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목표는 고졸 출신이란 학력의 벽에 막혔다. 1년 반 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평소 읽고 싶던 책들을 한아름 챙겨 부산에 있는 절에 들어갔다. 5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했다.

가족의 걱정에 산에서 내려왔다. 마침 삼성전기에서 대졸 사원을 뽑았다. 필기시험 성적이 좋아 고졸이지만 특채로 입사했다. 설계자격증을 보유한 덕분이었다. 특채로 입사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절에서 보낸 5년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기계설비 ‘마니아’에서 창업으로

아버지가 운영한 정미소를 보고 자라서인지 유년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곡식을 계량하고 알곡과 껍질을 자동으로 분리해 포장에 이르는 자동화 기계설비는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동하는 기계를 보면 뜯어보고 직접 설계해보곤 했다.

1980년대는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에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던 때였다. 장 회장은 남을 따라 하는 걸 싫어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행동으로 옮겼다. 한번 꽂히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외골수 성격도 발동했다. 다른 직원이 한 달에 자동화 기계 한두 대를 제작할 때 그는 일곱 대를 만들어도 힘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모든 기계를 섭렵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사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1986년 사표를 내고 진우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생산설비도 직접 제작했다. 계열사가 늘어도 설비를 꼼꼼히 챙기는 건 항상 그의 몫이었다. 기계 설비에 대한 그의 애착을 두고 지인들은 ‘기계 신(神)’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장 회장은 입체 공간에서 공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연상하고 형상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평한다. 혼자 머릿속으로 공정을 연상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설비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이다. 그는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계열사 생산설비는 없다”며 “하얀 도화지에 제조 라인을 그리고 공정에 맞는 설비들을 설계해 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실패는 기술 축적의 빅데이터”

장 회장은 술을 전혀 못 마신다. 그런 그가 중견기업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실패에 대한 관용과 기술 개발을 향한 남다른 집념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사업가’라기보다 ‘엔지니어에 가까운 경영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장 회장이 고집스럽게 지키는 경영 원칙이 ‘실패한 직원을 문책하지 않는다’이다. 수소자동차용 부품 개발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2000년대 들어 세계가 수소에너지에 주목하면서 국내 대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뛰어들었다. 10년이 지나도 시장이 열리지 않자 대기업들은 투자를 중단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직원들에게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독려했다. 직원들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해도 단 한번도 질책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수소차 엔진에 들어가는 기체확산층(GDL) 소재 개발에 투자를 집중했다. 결국 성공해냈다. GDL은 공기를 연료전지에 고르게 확산시켜주는 장치(분리막)로 해외에서는 독일과 일본 업체만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그는 “실패는 굉장한 빅데이터”라며 “한 번에 성공한 사람은 한 가지 성공한 기술만 알지만 실패한 사람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기술과 경험을 체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수한 실패 경험으로 축적한 기술 노하우가 JNT그룹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수소차시장은 새로운 성장동력

길을 가다가도 생소한 용어를 접하면 바로 스마트폰을 켜고 확인하는 게 장 회장의 오랜 습관이다. 그는 “미래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선점하기 위해선 뒤처져선 안 된다”고 했다. JNT그룹의 사시를 ‘미래산업의 주역이 되자’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동화 설비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계속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모바일용 부품회사(JNTC)를 세워 필름처럼 구부러지는 커버글라스를 국산화했다. JNTG가 수소차용 부품 개발에 뛰어든 것도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초창기 자동화 설비 사업은 고객사 요구에 따라 매출이 좌우됐다. 회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예측 가능한 사업과 아이템 발굴이 전제돼야 한다. 장 회장은 “다행히 설비·기계·공정을 아우르는 엔지니어링 지식을 쌓아 모바일, 2차전지, 반도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첨단 산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성장성이 큰 아이템을 찾아 길목을 지키는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장상욱 회장은…

◇1959년 경북 울진 출생
◇1978년 부산기계공고 졸업
◇1983년 삼성전기 연구원
◇1986년 진우엔지니어링 설립
◇1992년 진우엔지니어링 법인 전환
◇1999년 JNTC 설립
◇2010년 JNTS 설립
◇2011년 JNTG 설립
◇2015년 JNTC 베트남법인 설립
◇2019년 하반기 JNTC 코스닥 상장(예정)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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