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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 찬반토론] 출근길 신호위반·무면허 사고까지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나
2021/09/06
[ 허원순 기자 ]
근로자가 출근 도중에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이를 산업재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출근길 무면허, 신호위반 등 근로자 본인의 중대한 잘못으로 인한 사고라면 이런 경우에도 근로자는 산재 사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최근 국내 법원이 근로자 본인의 범죄적 행위로 인한 출근길 사고까지도 산업재해(산재)로 인정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강제적 사회보장 보험으로 ‘4대 공적보험’의 하나인 산업재해보험의 원래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취약계층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며 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산재보험은 원래 근로자가 작업장에서 사고를 당할 경우 근로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1964년 도입한 첫 사회보험제도다. 모든 근로자가 내는 산재보험료와 동일한 금액을 국가가 기업, 자영사업자 등 사업주로부터 강제로 보험료로 징수해 사고 근로자에게 보상해준다. 따라서 불법 행위로 인한 사고에까지 보상해주면 재원(산재보험 기금)이 고갈될 수 있고, 근로자들의 부담(산재보험료)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무면허나 신호위반으로 인한 사고까지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은 올바른 것인가.
[찬성] 산재보험 도입 취지를 살리는 게 중요…취약계층 근로자 살펴야
한국 법원은 2021년 7월에만 두 건의 판결을 통해 출근길 근로자의 무면허 운전사고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했다. 이전 같으면 근로자 본인 잘못으로 인한 사고는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었는데, 진일보한 판결이다. 비록 무면허 사고이기는 했지만 50cc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근로자의 어려운 처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준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무면허나 신호위반은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의 범죄적 행위이므로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며 유족의 산재보험 적용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원래 법 제정 취지를 제대로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법원(울산지방법원)은 교차로에서 생긴 사고에 대해 직진하던 트럭이 좀 더 운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트럭의 잘못도 20% 있다는 보험사의 과실분담 인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요컨대 무면허 운전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신호위반 정도는 중대한 과실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던 근로자가 횡단보도에서 당한 사고에 대한 판결(서울행정법원)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정상적으로 운전 중이던 차에 부딪혀 입은 중상이지만 신호위반 정도의 과실이 산재 적용이 되지 않을 만큼의 중대한 사유는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판결은 결국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의 적극적 해석이다. 단순히 신호위반을 했느냐, 무면허 운전인가 등 표피적 현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재제도를 도입했을 때 원래 취지에 주목한 것인 만큼 법원의 해석은 존중돼야 한다. 필요하면 산재보상법을 바꾸고, 근로복지공단도 산재 판정에서 좀 더 근로자 입장이 돼야 한다. 재해 용인 범위를 가급적 넓게 해서 근로자를 더 적극적으로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
[반대] 보험의 원리, 국민 법감정도 봐야…국고 지원 아니면 근로자 부담 증가
특례법을 통해 명시적으로 규정해둔 중과실은 일종의 범죄 행위다. 이런 경우에까지 산재 보상을 해준다는 것은 과잉이다. 일반 국민의 법감정부터 한번 생각해보자. 약자를 보호한다는 논리처럼, ‘명분만 그럴듯하면 법을 위반하고 법에 정해진 것과 달리 해석·집행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근로자들도 신호위반이나 무면허 운전 정도로는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준법 정신을 무너뜨리고 법치주의와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 엄한 단속과 경고는커녕 그런 사고가 많아지면 결국에는 근로자 스스로도 피해자가 된다.

현실적으로 산재보험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며, 어떤 식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 모델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공적 제도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보험이다. 즉 보험 가입자(근로자, 사업주)가 있고, 보험료(근로자 급여에서 떼는 보험료와 사업주가 내는 보험료)를 매월 정기적으로 내며, 이를 재원으로 사업장에서의 사고에 대한 보상(산재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보험료를 내지 않는 비자격자가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본인의 명백하고 중차대한 과실, 즉 범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게 보험의 기본이다. 그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사정이 어렵고 딱하다고 범죄적 행위에까지 산재보험을 적용해주면 건전하고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며 법규를 정확히 지키는 ‘정상 근로자’의 보험금이 줄어드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중대한 과실에도 선심 쓰듯 산재를 마구 적용해 나가면 산재 보험료율이 올라 근로자가 내는 납입 보험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산재보험 기금에서 부족한 부분만큼 국고 지원을 더 해줘야 하는데, 일반 국민이 이를 쉽게 용인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보험이 법규 위반 행위까지 다 용인하면 다른 어떤 좋은 제도도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어렵다.
√ 생각하기 - 준법정신 훼손 우려…과도한 '언더도그마 현상'은 경계해야
출퇴근 사고가 산재로 인정받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2019년 7001건이었는데 2021년에는 1만 건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근로복지공단 분석이다. 출퇴근길 사고에 지급된 산재보험금이 2019년 기준으로 이미 1300억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 명백한 근로자 본인 과실에 대한 사고까지 정상 산업재해 때처럼 보험금을 지급한다면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복지는 아니지만, 이런 것도 무한 팽창하는 복지의 연장이다. 잇따른 법원 판결이 준법정신을 훼손한다면 그것도 심각한 역설이다.

산재보험이 장기적으로 계속 제 기능을 하자면 재원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매월 급여에서 떼는 산재보험료를 올리면 바로 근로자의 부담이 증가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과도하게 ‘언더도그마 현상’(사회적 약자는 선(善)하다는 인식, 반대는 오버도그마 현상)이 이런 데도 미치는 것은 아닌지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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