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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노믹스] 경영권 위협받는 삼진그룹 구한 고졸 여사원들…기업규제 3법 앞의 한국기업들은 버틸 수 있을까
2021/11/09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7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下)



[ 강영연 기자 ]
1990년대 회사에서 고졸 사원들을 위해 영어토익반을 개설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8년째 아침마다 커피를 타는 등 허드렛일을 하는 삼진그룹 고졸사원 이자영(고아성 분)은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 진급을 시켜주겠다는 회사 제안에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어느날 회장 아들 오태영 상무(백현진 분)의 심부름으로 찾은 삼진그룹 옥주공장에서 페놀이 방류되는 현장을 목격한 자영은 바로 회사에 보고한다. 회사에서는 미국 환경연구소에 의뢰한 검사결과를 내밀며 문제없다고 밝히고 주민들과 2000만원의 보상에 합의한다. 하지만 검사서 등이 조작된 것이 드러나고, 자영은 동료인 유나(이솜 분) 보람(박혜수 분)과 범인으로 오 상무를 지목하며 사건을 추적한다.
기업규제 3법에 M&A 위협에 내몰린 기업들
영화는 반전을 거듭한다. 범인은 회장 아들이 아니었다.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하려는 ‘글로벌 캐피털’과 이를 위해 회사에 취업한 빌리 박 사장(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이었다. 삼진그룹은 글로벌캐피털이라는 헤지펀드에 적대적 인수합병(M&A)될 위기에 놓인다. 글로벌캐피털은 페놀 유출 사고를 조작하고, 이로 인해 주가가 떨어진 삼진그룹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여 지분을 늘린다. 이 헤지펀드의 최종 목표는 삼진그룹을 일본 회사에 되파는 것. 이를 통해 번 돈으로 다시 다른 한국 기업을 사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자영과 동료들의 노력으로 이 같은 시도가 좌절된다. 실제는 어떨까.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12월 강행처리한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으로 글로벌 헤지펀드의 공격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각 기업이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할 때 오너 일가를 포함한 대주주 지분율과 상관없이 의결권을 일정 한도로 묶는 제도다. 보통 이사회에서 선출되는 기업 감사위원 중 한 명 이상을 이사회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하고, 선출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각각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산총계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적용된다. 대주주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 소버린 등 글로벌 헤지펀드가 삼성 현대자동차 SK그룹 등을 공격했던 과거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지난해 30대 그룹 상장사 93곳(자산 2조원 이상)을 대상으로 국내외 투자가 지분율을 조사한 결과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가 도입돼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30대 그룹 93곳 중 32곳(34.4%)의 해외 기관투자가 의결권 지분율은 국내 투자가 지분율을 넘어섰다. 세 곳 중 한 곳은 해외 기관투자가가 선호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해야 하는 셈이다.
가격이 설명할 수 없는 이타심
폐수 방류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영과 동료들은 회사에서 해고될 뻔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력자를 찾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한다.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은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는 기존 경제학적 가정과는 어긋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가격)’이 작동하는 시장에선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기도 하다. 고전경제학에선 이런 도덕적 행동이 이윤 추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대구가 어려움을 겪자 의료진은 생업을 접고 대구로 향했다. ‘라면 형제’를 위한 기부금은 20억원 가까이 모였다. 새뮤얼 볼스는 그의 책 《도덕경제학》에서 인간의 순수한 이타심이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봤다. 영화 속 자영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가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볼스는 또 경제적 유인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사회질서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강화된다고 했다. 시장과 법치라는 규범이 작동하는 곳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서로간에 관대하고, 신뢰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영과 동료들의 활약으로 마을 주민들은 최대 1억3000만원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삼진그룹은 마을 재생사업도 약속한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이 교환의 대상이 되고 금전적 타락의 시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에서 벗어난 것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믿음, 신뢰 등 사회적 도덕으로 움직인 자영 같은 개인들 덕분 아닐까.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순수한 이타심과 자신의 경제적 이익 가운데 인간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쪽은 어디일까.

② 외국 투기세력의 M&A 위협 방지와 국내 기업의 경영 감시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까.

③ 발전된 사회일수록 경제적 유인보다 사회적 요인이 사람의 행동에 더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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